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21세기 처세서의 진수,
<후흑학>
중국판 군주론, 중국판 마키아벨리즘, <후흑학>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후흑학>이란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적절히 계략과 술수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이러한 사상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런 사상이 도(道)를 중시하는 공자의 나라 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흑학 저자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초한지제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역사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승자와 패자의 갈림길이 ‘후흑’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후흑(厚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이다. 대체로 뻔뻔함, 음흉함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후흑학을 뻔뻔, 음흉 정도의 단순한 처세학으로 이해한다면 후흑학의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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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5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처세의 비밀 |
‘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줄인 말이다. 후흑학은 청조 말에 출간되어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하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로 대륙 전역에 화제를 모았으며 현대 중국인의 국민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학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 ‘뻔뻔함과 음흉학의 미학’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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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연구의 대가 신동준의 역작 <후흑학>, 21세기 기업가와 직장인의 필독서로 다시 태어나다 |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은 고전 속에서 기업경영 및 자기계발 메시지를 찾아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저자가 내놓은 역작이다. 그는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한 해법을 동양 3국의 고전에서 찾고 있으며, 총 두 차례의 번역과 편역 끝에 완성한 해설서이다.
이종오의 <후흑학> 요체를 핵심적으로 압축해 소개하고 있으며, 원전이 강조하는 ‘구관육자진언’, ‘주관육자진언’ 등 관직을 얻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후흑술을 21세기에 맞게 재정비해, 글로벌 전쟁터에 뛰어든 기업의 총수, 간부,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처세술로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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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정수, <후흑학> |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인간 내면 깊숙한 심성, 심리로부터 외적인 행동모습들,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 인간과 신과의 관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등을 테마로 하여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문학, 역사, 철학이고, 요즈음 통섭에 의해 자연과학 등까지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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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厚黑學)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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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과 박백 |
-후흑(厚黑)은 청조말의 기인 이종오가 저술한 <후흑학>에서 나온 말로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준말이다. 즉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시커멓다’라는 뜻이다. 이는 면박심백(面薄心白), 얼굴은 엷고 마음은 투명한 것의 반대말이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단순한 처세술을 넘어선다. 이종오가 말하는 후흑학의 근본취지는 ‘후흑구국’으로 청조말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열강의 침탈로부터 나라의 독립과 자주를 지키는 것이다.(10쪽)
-조선은 구한말 박백(薄白, 인의와 도덕을 기치로 내걸고 왕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패망한 적이 있다. 당시 조선 사대부들은 패도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을 마주하면서도 조선이 왕도를 견지하면 일본 놈들도 언젠가는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난세의 시기에 붓을 들어 칼에 맞서고자 한 꼴이다. 칼을 든 강도에게 도덕선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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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술 |
-후흑은 ‘인간은 근복적으로 이기적’이라는 한비자의 성악설에 근거하고 있다. 무위자연을 역설한 도가사상과 신상필벌을 역설한 법가사상이 한비자에서 통합된다. 이종오는 <후흑학>을 통해 한비자를 정밀하게 분석한 것이다.(14쪽)
-한비자와 노자의 제왕학에 기초한 후흑은 맹자의 성선설에 기초한유가 제왕학의 박백과 뚜렷이 구별된다. 후흑학은 맹자의 성선설과 성리학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14쪽)
-인의를 최고의 도덕규범으로 내세운 조선조 관료사회에도 후흑이 존재했다. <삼국지 속의 삼국지>를 보면,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을 후흑의 달인으로 묘사하고 있다.(15쪽) 조선 세종 때 명재상 황희 정승이 ‘후흑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은 사뭇 이채롭다. 명색이 조선의 영의정이 허름한 초가집에서 된장에 풋고추로 밥을 먹는 것을 본 세종은 황희의 검소함에 반했다. 하지만 그것은 황희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접한 위인전에 등장하는 황희는 단점을 찾기 힘든 유능한 2인자였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법, 실제 황희는 사악한 탐관오리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황희가 대놓고 뇌물을 받은 것만 8번이다. 그 외에도 그는 친구가 죽자 친구의 아내를 간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황희의 부정은 손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역사는 그를 유능함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그가 공과 사를 잘 구분했기 때문이다. 주는 뇌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을 편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고도 정치를 잘 못하는 오늘날의 탐관오리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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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구국 |
'후흑구국'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난세의 군주는 결코 통상적인 도덕률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반드시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을 기본덕목으로 갖춰야 한다”는 말과 취지를 같이 한다.(16쪽)
저자 이종오는 <후흑학> 첫머리에서 후흑을 뒤늦게 찾아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초 나는 글을 안 후 영웅호걸이 되고자 했다. 유가 경전인 사서오경을 수도 없이 읽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중략) 나는 과거 영웅호걸이 된 자는 분명히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비술을 터득했을 터인데, 나만 못나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왕조의 흥망성쇠와 이를 논한 사관의 평이 완전히 상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 비결은 바로 낯가죽은 두꺼운 ‘면후’와 속마음이 시꺼먼 ‘심흑’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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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 : 칼날의 빛을 칼집에 숨기고 어둠속에서 힘을 기른다.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
승자들의 위인전을 곧이곧대로 읽지 마라. 글
자 너머의 행간을 읽어라.
낯가죽이 두껍고 속이 시커먼 사람들이 승자가 되었다는 중국 역사의 가르침,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일본에도 후흑학에 버금가는 ‘야스오카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그런데 유독 동아시아 3국 중 우리나라만 이런 기인이 없다. 없으면 배우기라도 해야 되는데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구미의 대통령학을 비롯한 서구의 리더십론만으로도 능히 21세기의 격량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모르겠다.(19쪽)
‘승자의 역사’인 사서의 기록을 살펴볼 때 반드시 그 이면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종오도 사서를 읽을 때 그 행간을 읽음으로써 절세의 구세주와 만고의 역적이 엇갈리게 된 배경을 찾아냈다. 절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흑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가 24사를 통독한 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36쪽)
후흑의 연마과정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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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단계 |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은 숯덩이처럼 시꺼먼’ 단계로서, 다른 사람의 공격에 쉽게 파괴되는 초보적인 수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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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단계 |
‘낯가죽은 두꺼우면서도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단계로서, 이 단계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공격에도 미동도 하지 않으며 후흑의 자취를 나타내는 형체와 색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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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단계 |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체가 없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하늘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후흑과 정반대의 불후불흑(不厚不黑)의 인물로 여기게 된다. 이런 경지의 인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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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오가 <후흑학>에서 역사상 최고 수준의 ‘면후심흑’을 터특한 인물로 꼽은 사람 중에는 월왕 구청 이외에도 삼국시대 위나라의 권신인 사마의가 있다. 난세의 시기에 승리를 낚고 장차 천하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후흑을 깊이 연마해 가장 높은 경지인 불후불흑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탁견이다.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지약우(大智若愚), 크게 깨달은 사람은 어리섞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후흑은 유가의 ‘중용(中庸)’과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제 일의 제자 안회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내가 안회와 더불어 온종일 얘기했다. 그가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일견 어리석은 듯 했다. 그러나 그가 물러간 뒤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 내막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즉, 대지약우(大智若愚), 크게 깨달은 사람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한다.(49쪽)
월왕 구천은 회계싸움에서 진 뒤 스스로 오왕 부차의 신하가 되었다.
그의 처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면후'의 비결이다. 구천은 후에 거병하여 오나라를 깨뜨렸다. 부차는 사람을 보내 통곡하며 자신은 신하가 되고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빌었으나 구천은 조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당시 그의 입자에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부차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심흑'의 비결이다. 후흑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면후가 나온 뒤 심흑이 뒤따라야 한다.(61쪽)
중국 통치의 근간, ‘후흑’
이 책의 저자가 이종오의 <후흑학>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현대 중국의 통치철학이 바로 후흑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등소평 이후의 개혁개방노선을 추구하면서 ‘칼날의 빛을 칼집에 숨기고 어둠속에서 힘을 기르는'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책략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또한 일본 제왕학의 태두로 칭송받고 있는 야스오카 마사히로의 방대한 동양학 저서를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야스오카학은 일본판 후흑학에 해당한다.
동양 3국 중 우리나라만 이러한 후흑학에 대한 가르침이나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1세기 중국과 경쟁해야 하며,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미국, 일본, 중국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조선시대 군신이 주자학에 매몰되어 왕도만을 중시한 채 실질적인 부국강병을 꾀하지 않아 임진왜란을 겪었고, 구한말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기도 했다. 저자는 <후흑전습록>에 나오는 열네 가지 책략 중 현재에도 의미가 있는 아홉 가지의 책략을 제시한다.(171-294쪽)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고, 술로 사귄 친구는 믿음직하지 못하다."
<후흑전습록>에서 말하는 9가지 책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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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공(空) –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어라.
일을 처리할 내용이 없을지라도 외관만큼은 그야말로 엄격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라. <군주론>에서 말하는 “군주는 모든 덕을 갖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든 덕을 갖춘 것처럼 행동하라”는 말과 괘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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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공(貢) – 반룡부봉하되 역린을 조심하라.
반룡부봉이란 “용의 비늘을 휘어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었다”는 뜻이다. 훌륭한 사람에 빌붙어 출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멍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고, 구멍이 없으면 뚫어서라도 들어가야 한다. 구멍이 있는 자는 그것을 확대하고 구멍이 없는 자는 송곳을 꺼내 새로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처세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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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충(沖) – 호언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충’은 ‘허풍떤다’는 말이다. 허풍떠는 재주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말재주와 글재주다. 허풍은 난세에 더 잘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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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봉(捧) – 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
‘봉’은 ‘무대의 배우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는 뜻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부와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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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공(恐) – 솜에 바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 .
‘공’은 협박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건 약점과 급소가 있다. 그 급소를 찾아 가볍게 찌르기만 해도 그는 질겁하고 도망간다. 후흑을 배우는 자는 협박과 아첨을 병행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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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송(送) – 비자금을 활동자금으로 활용하라.
‘송’은 한 마디로 뇌물을 주는 것이다. 뇌물을 주는 이유는 청탁 때문이다. 청탁의 종류는 다양하고 지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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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공(恭) –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공’은 마치 관절이 없는 사람처럼 비굴할 정도로 아첨하고, 상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헤헤거리는 것을 말한다. 치열한 경쟁을 먹고사는 인간사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다. 난세일수록 약육강식의 양상은 더욱 광포하게 나타난다. 처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생존의 주도권을 강자가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을’들은 ‘갑’에게 기대고 아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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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붕(繃) –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어라.
‘붕’은 <36계>의 제1계로 나오는 소위 ‘만천과해(瞞天過海)와 통한다. 황제를 속여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는 의미다. 상대는 당신이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하면 나태해지기 쉽고, 자주 보면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일상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게 되는 심리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들어 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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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농(聾) –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농’은 귀머거리와 벙어리처럼 행동하라는 뜻이다. ‘비웃고 욕하거려든 마음대로 지껄여라. 그러나 좋은 자리는 모두 내 것이다’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친 척하며 속셈을 숨기라는 것이다.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매우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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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성세'는 군사와 외교 방면에서 자주 구사되는 술책이다.
기본적으로 막강한 무력이 뒷받침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껏해야 소위 ‘블러핑(bluffing)’으로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을 뿐이다. 블러핑은 일시적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면 승부로 착각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계속해서 구사할 경우 오히려 자신의 허약한 패를 상대방에게 읽혀 낭패를 당할 소지가 크다.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게 바로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실력을 기르는 도광양회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중국이 개력개방 30년 만에 G2로 우뚝 선 비결이기도 하다.(219쪽)
난득호도 수준에 이른 오바마의 후흑 행보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나타났다.
그는 원자바오 총리와 악수할 때 고개를 45도가량 숙였다. 반면 원자바오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그를 맞았다. 원자바오는 ‘제2의 주은래’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서민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가 목을 세운 것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복돋워주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오바마의 후흑 속셈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당시 오바마는 자신의 몸을 한껏 낮춰 이같이 말했다.
“미국 경제는 중국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 미국의 자존심은 찾을 길이 없다. 아무리 미국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할지라도 과연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을 써가며 중국 수뇌부의 자부심을 부추길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아직도 미국을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로 여기고 있는 미국인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보는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고단수의 술책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이 계속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할을 분담할 그럴듯한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돌아봐도 중국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은 ‘면자(面子;체면)’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들의 면자를 한껏 북돋워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300~301쪽)
주의할 것은 글로벌 경제 전쟁의 총사령관 격인 최고 통치권자를 비롯해 일부 글로벌 기업의 총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사’와 ‘하사’의 리더십을 공히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상사’와 ‘하사’의 리더십이 충돌하는 데 있다. 난세의 군주는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여서는 안 되고, 반대로 난세의 신하는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군주의 속마음을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 또한 난세의 군주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써서는 안 되고, 반대로 난세의 신하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의 최고 통치권자와 글로벌 기업의 총수 밑에 있는 층층시하의 수많은 간부들은 과연 어떤 리더십을 구사해야 하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하사’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총수의 신임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략과 소신을 펼칠 수 있고, 휘하의 하사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 (331~332쪽)
‘후흑’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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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와신상담의 월왕구천
중국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후흑의 대가는 월왕구천이다. 그는 오왕 부차에게 패한 뒤 그의 신하가 되었으며, 그의 아내를 오왕의 첩으로 보낸다. 그는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거병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부차는 사람을 보내 구천의 신하가 되고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빌었으나 후환을 없애기 위해 부차를 죽였다. 후흑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면후가 나오고 심흑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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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항우와 유방
항우와 유방의 전쟁에서 유방의 승리도 바로 이 후흑 유무의 결과였다. 항우는 귀족출신으로 불의를 참지 못하고 수모를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고귀한 신분으로 능력은 있으나 신분이 비천한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다. 반면 유방은 임협(건달)출신으로 평상시에는 건달과 같이 행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방은 천하를 다투는 중요한 시기에는 필요한 사람은 예우하였으며, 여자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고 한다. 유방의 후흑은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에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자신의 자식들을 세 번이나 마차에서 발로 밀어냈고, 천하를 얻은 뒤에는 한신과 팽월을 도사구팽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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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조조와 유비
삼국지의 두 영웅, 조조와 유비도 후흑이 대가였다. 더 자세히 말하면 조조는 심흑의 대가였고, 유비는 면후의 대가였다. 조조는 치세의 간적이자 난세의 영웅이었다. 조조는 인재를 능력에 따라 과감히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 엄격함과 관용을 겸비한 신상필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과감한 포기,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등이 탁월했다. 조조는 아무리 적이라도 능력이 탁월하면 자기 사람으로 삼았고, 자기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은 아낌없이 죽였던 것이다. 바로 심흑의 대가였던 것이다. 반면 유비는 면후의 대가이다. 유비는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 조조, 여포, 손권, 원소 등을 오가며 빌붙었다. 남의 울타리에 속에 얹혀살면서도 이를 전혀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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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왜 일찍 학교에서 이러한 가치를 접하거나 선배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가방 끈을 메면서부터 지나치게 ‘착하게, 바르게’의 논리에 매몰되었던 것은 아닌지 되새겨볼 일이다. 그동안 동방예의지국답게(?) ‘왕도’에 기반한 도덕논리가 위세를 떨쳤다. 공자가 말한 중용의 가르침 즉,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난세의 처세술에 대해서는 비겁한 것이라고 배웠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는 마키아벨리즘을 지나치게 배척해왔다. 물론, 박백(薄白)의 가치는 소중하다. 그러나 인간사가 경쟁을 먹고사는 전쟁터임을 감안해보면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안이한 발상이다. 때와 장소를 고려하지 않는 맹목적인 박백은 오히려 신중치 못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때늦은 감이 있다.
국가적으로도 너무 안이한 처세다. 주변 열강들은 시도 때도 없이 ‘후흑’으로 다가오는데 태평스럽게 ‘박백’으로 대응하는 것은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의외로 ‘후흑’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참 아이러니 하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깨우친 것일까? 문제는 어설픈 ‘후흑의 달인’들이 넘쳐난다는 데 있다. 시기나 장소에 관계없이, 공사 구분 없이 오로지 후흑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후흑’을 잘못 배운 결과다.
물론 <후흑학>이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아Q정전>의 한 단락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미치지 않은 개까지 몽둥이로 다스리는 우둔한 ‘후흑의 달인’들이 넘쳐난다는 것이 골칫거리다. 소위 리더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미친개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능력조차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후흑학>은 피도 눈물도 없이 늘 강압적으로 처신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처럼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의 철학을 교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비자>, <군주론>, <후흑학>을 읽을 때는 두 가지 전제에 공감이 필요하다. 세상은 전쟁터이며 전쟁터에서는 무력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시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말고 도덕적으로 접근하되, 비상사태에 빠졌을 때는 도덕보다 힘을 사용하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힘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적 차원에 한해 사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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