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들의 심보를 까발린
약자들을 위한 책,
<마키아벨리>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노하지도 마라.
역사는 분노한 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조언이다.
약자들의 진정한 리더, 마키아벨리 제대로 알기--------
<마키아벨리>는 여느 고전처럼 딱딱하지 않고 편안하게 현장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책상머리가 아닌 외교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토대로 했듯이, 인문학 멘토라 불리는 이 책의 저자 김상근 교수 역시 직접 피렌체를 방문하여 마키아벨리의 흔적들을 직접 확인하고 본 것을 토대로 한 발로 쓴 체험서다.
500년간 철저히 왜곡되어온 마키아벨리의 인생철학을 복원하다!
지난 10년간 르네상스 연구에 매진해 저자가 마키아벨리에 대한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마키아벨리의 역사적, 인문학적인 면모를 새롭게 재해석하였다.
이탈리아를 포함해 마키아벨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럽 곳곳을 누비며 직접 확인한 마키아벨리의 행적과 그의 사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발로 따라가면서 그 역사적 의미와 인문학적 통찰력을 구체적으로 짚어나간다. 지배자들에 의해 500년 동안 감춰졌던 마키아벨리의 생존전략, 때를 기다리고 스스로 무장하여 인생의 질곡을 현명하게 넘는 방법, 마키아벨리가 수많은 영웅들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진정한 리더의 모습,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만들어낸 고전 읽기와 새 시대 영웅을 위한 그의 비밀 프로젝트 '루첼라이 정원 모임'도 소개한다.
서문-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마키아벨리를 만나다.
마키아벨리의 책은 원래 철저한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위해 집필됐는데, 이 책의 가공할 만한 가치를 알아본 그 시대의 강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로 몰고 간 것이다. 강자들의 눈에 비친 마키아벨리의 책은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천기를 누설하듯이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솔직하게 까발리는 마키아벨리의 지혜와 통찰력이 두려웠던 것이다. <몰타의 유대인>에 묘사된 것처럼, 권력을 가진 강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책을 몰래 혼자서만 읽고 싶어 했다....이렇게 마키아벨리를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독점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사악함의 대명사로 몰고 간 것이다.(18쪽)
제1부-약자들의 수호성자, 마키아벨리
많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로, 그의 역작인 <군주론>을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로 평가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사실 본인 스스로가 철저한 약자편이었다. 그는 강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당하는 약자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당시 강자들은 마키아벨리의 놀라운 통찰력을 독점하기 위해 그를 사악함의 대명사로 몰고 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왕들을 가르치는 척 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가르친 것은 민중들이었다.
-루소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핏대를 세울 것이 아니라, 약자라면 이제 인터넷 악성 댓글이나 짱돌을 던지기 전에 마키아벨리 책을 들어라. 군주론이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읽혀지는 이유는 마키아벨리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인문학자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을'로 살아가는 약자들이라면 '갑'에게 삿대질을 할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데 현실은 약자들일수록 인문학과 고전을 멀리한다.
아니다.
약자여서 고전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멀리했기 때문에 약자가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갑'에게 '더 이상 당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을'들이 마키아벨리 리더십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마키아벨리식 생존전략,
약자들이여, 고전을 손에 들어라.
청춘들이여, 토익책을 덮고 군주론을 펼쳐라.
강자에 맞서는 약자들의 필살기,고전으로 돌아가라.
고전에서 지혜를 찾아라.
강자들은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강자가 된 것이다.
고전을 읽은 힘 센 놈들과 맞짱을 뜨려면 함께 고전을 읽어야 한다.
아니, 강자들보다 더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
약자들은 강자들이 수백만원 하는 인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피렌체를 오간다는 사살을 기억해야 한다.
강자들의 횡포에 맞서는 약자들의 인문학 <군주론>, 고전과 경험이 마키아벨리의 위대한 리더십을 만들었다.
마키아벨리에게 강자의 횡포에 맞서는 첫 번째 길은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약자의 설움을 눈물로 대신 삼켜야 했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약자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살았다. 그 방식은 고전으로부터 지혜를 얻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이끌었던 수많은 지도자들과 로마 제국의 옛 현자들이 어떻게 시련과 위기를 극복해 나갔는지 묻고, 그들의 답을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약자의 삶에 대입시켜 그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다.(48쪽)
편지에 쓴 대로 그는 고전을 읽는 네 시간 동안만은 피렌체의 제2서기장 시절에 입었던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고대의 성현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기 혼자만의 예의를 갖춘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시골의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작은 방 안에 홀로 촛불을 켜 놓고 관복을 입은 채 열심히 고전을 읽고 있는 마키아벨리를 한번 상상해보시라.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불쌍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키아벨리가 쓴 천하의 명저 <군주론>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현실은 나폴리, 프랑스, 스페인 군대가 차례로 짓밟고 지나갔지만 그의 정신만은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일상에 지치고 약자의 삶에 신물도 나지만, 그래도 우리가 용기를 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49-50쪽)
마키아벨리가 근무하던 시뇨리아 정부종합청사 2층 집무실에 걸려 있는 마키아벨리 초상화다.
"깡마른 체구에 냉소적이고 차가웠지만 반짝이는 눈빛과 날카로운 관찰자였다."는 빌라리(마키아벨리 전기 최초 출간자)의 지적 그대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빶뎠을 때 쓴 책이다.
그에게 1512년, 모든 것이 완전히 박살난 해였다.
공직 파면, 반역 혐의로 체포, 감옥에서의 모진 고문,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거액의 보석금 납부, 정청 출입금지, 가택연금....
겨우 몸을 추스린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외곽 허름한 농장에서 유배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청년기 25-29세 때, 신정정치로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피렌체의 1인자로 등극했던 수도원장 사보나롤라가 불과 4년 만에 대중들에게 불에 타 죽은 광경을 목격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의문을 던졌다.
-종교는 사회유지를 위한 유용한 도구인가?
-왜 사람들은 권력을 잡으면 변하는 것일까?
-갈대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며 손바닥 뒤집듯이 자기 입장을 바꾸는 대중들을 믿을 수 있는가?
권력을 잡으면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다.
현실이 요구하는 변화의 이유가 절박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현실이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권력을 잡으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권력 그 자체가 인간을 변하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마키아벨리의 눈에 비친 99%의 대중은 늘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고, 힘을 가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나약한 존재였다. 다른 사람들의 지시를 박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둔한 존재였다. 로마 역사를 토대로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습성은 얼이 빠진 짐승처럼, 사나운 본성을 가지고 숲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 속에 갇혀 노예처럼 사육되는 존재"라고 일갈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자유로운 인간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도 어렵지만, 고분고분한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어렵다."
"대중은 종종 지배자의 결점을 비난하는 데 대담하고 노골적인 언사를 사용하지만, 이윽고 형벌이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순식간에 동료들끼리 서로 신용할 수 없게 되서 서둘러 그 지시에 따른다."
-마키아벨리, <로마사논고>
결국 '을'들은 떼지어 뭉치면 큰소리 치지만 각개전투로 들어가 한 명씩 처벌을 하면 이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갑'을 따른다는 말이다. 서울광장에서 떼지어 모여 정치인을 욕하고, 악성 댓글을 달며 비민주적이라며 큰소리 치다가도 몇 명만 잡아다 감방에 쳐넣으면 순식간에 도망간다는 말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마키아벨리는 '얼이 빠진 짐승처럼' 조변석개하는 대중들의 우매함을 성찰하면서, 지배자들에게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가해 행위는 한 번에, 은혜로운 일은 조금씩 자주'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기업으로 치면, 경영자는 "해고는 한 번에, 월급은 찔끔찔끔 자주 올려주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경영자들이 아주 잘 써먹고 있는 전략이다.
그래서 인사위원회라는 것도 생겨났다.
손에 피 묻히고 처벌하는 것은 인사위원회를 통하고, 월급을 올려주고 상을 주는 것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경영자가 직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대중들에게 정치가 썩고 편법이 판치고, 취직이 안되도 결코 울거나 분노하지 말라고 한다.
선동가들의 꼬드김에 쉽게 마음을 바꾸거나 분노한 사람들 틈에 끼여 무작정 돌을 던지지도 말라고 한다.
그보다는 냉정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고전을 통한 지혜를 갖추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얼 빠진 짐승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한다.
역사는 울보나, 분노한 자에게 맡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99%의 대중들은 왜 늘 1%의 소수에게 당하고 사는 걸까?
그것은 99%들이 울보이기 때문이며, 쉽게 분노하면서 이성을 잃기 때문이다.
"왜 한쪽은 언제나 지배하고, 다른 한쪽은 언제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지배를 하는 사람은 이성을 가진 반면, 지배를 받는 사람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국가>
"무슨 일에서나 선을 내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악당들 속에서 파멸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한다."
-<군주론>
지극히 현실적이긴 하지만 어지간히 얼굴이 두껍지 않고는 리더십 이론가가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여전히...
또한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소한 모욕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하지만, 너무나 엄청난 모욕에 대해서는 감히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해를 가할 때는 보복의 우려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아주 냉정하게 결론짓는다.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그 이유는 원래 인간이란 은혜도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위선적인데다 뻔뻔하고, 신변의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고 물욕에 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군주론>
마키아벨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어차피 포르투나의 힘에 의해서 우리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탁월함과 용기, 즉 비르투스를 발휘하여 한번 붙어 보라는 것이다. 운명에 우리 자신의 미래를 무조건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운명의 여신을 정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것이다. 성공할 확률은 50%다. 그리고 실패할 확률도 똑같이 50%라면, 우리는 그냥 앉아서 운명의 힘에 끌려 노예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포르투나에 맞서는 힘은 과단성 있는 결단에서 나온다는 것을.(172-173쪽)
"위인들 사이에서는 지난날의 원한이 새로운 은혜를 베풂으로서 깨끗이 씻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군주론>
한 번 배신한 놈은 또 배신한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가 '영원한 권력은 없다'고 주장한 이유는, 인간은 권력을 잡으면 '초심의 변질' 때문이라고 했다.
'을'일 때는 '갑'만 되면 나는 다른 갑들과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겠노라고 큰소리치지만 막상 '갑'이 되면 기존의 갑들보다 더한 갑질을 하는 게 인간이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밧줄을 내려줄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성공하고나면 밧줄은 커녕 있던 사다리조차 불태워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군주론>
그런데 현실은 의외로 강압적이고 두려운 리더들이 널리고 널렸다.
문제는 그 강압적인 리더십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매사에 써먹다는 것이 문제다.
기업으로 치면 창업초기나 새로운 기업을 인수했을 경우처럼 초기에 문화의 차이로 무질서할 경우 이 방법을 써먹어야 한다.
"인색한 지도자가 탁월한 지도자이며, 탁월한 지도자는 모두 인색해져야 한다."
-<군주론>
왜 탁월한 지도자는 도덕적이지 않고 인색해져야 할까?
그것은 대중들이 '얼이 빠진 짐승'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주체성도 능력도 없이 그저 시키는대로 노예처럼 일하는데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유능한 리더는 유능한 팔로워들이 만든다.
"대업을 이루려는 리더에게 꼭 필요한 두가지 덕목이 있다. 첫째, 냉혹할 정도로 인색해져라. 둘째, 권력은 절대 나누지 마라."
-마키아벨리
요즘 경영학 교과서는 '권한위임'이 대세다.
권한을 독점하지 말고 위임하고 나누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호랑이가 여우를 제압하는 것은 덩치 때문이 아니라, 날카로운 이빨 때문이다."
-<한비자>
호랑이가 이빨을 빼서 여우에게 주면 호랑이는 여우에게 잡아먹힌다.
대업을 이루고 싶은 리더는 머리에 뿔을 달아야 하고 카멜레온처럼 변신할 줄 알아야 하고 정직한 척 위장할 줄도 알아야 한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권력은 더 집중되어야 하고 집중된 권력은 아랫 사람들과 나누지 마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오너들이 잘 써먹고 있는 전략이다.
겉으로는 자울과 권한위임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들의 '얼빠진 짐승같은' 노예근성이 나쁜 지도자를 만든다.
지도자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말이다.
지도자는 대중들의 수준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탁월한 리더가 없는 이유, 인문학이 자리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논리만 무성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지혜를 갖출 수 있는 인문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후세들에게까지 교육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영어, 수학만 하는 인재로 가득하고 철학하는 청년들이 없다.
탁월한 리더의 부재는 리더가 아니라 탁월한 대중들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리더가 아니라 대중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얼이 빠진 짐승처럼' 대책없이 행동하고 스스로 하기보다는 시키는 일만 하는 주체성 없는 대중들이 나쁜 리더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고단한 삶의 버팀목은 뭐니뭐니 해도 평생을 함께한 고전이었다.
프랑스와 협상할 때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담판할 때는 투키디데스의 '역사'를 읽은 그였다. 그는 실직한 후에도 하루 4시간씩은 공직시절에 입었던 관복(官服)으로 갈아입고 고전을 읽었다. 그런 인문학적 통찰이 '군주론' 등 저작을 일궈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군주론'은 정치이론서나 처세술이 아닌 처절한 '구직을 위한 포트폴리오'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도자 한 명을 위대한 예언자로 떠받들다가 순식간에 등을 돌려 불에 태워죽이는 포퓰리즘과 다양한 외교현장을 체험한 마키아벨리가 당대 영웅들의 부침(浮沈)을 고전에 비추어 분석하면서 약소국 피렌체가 강대국들 틈에서 먹히지 않을 방법을 적은 안내서였다.
탁월한 리더가 부재한 우리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가 탁월한 팔로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동기에 자극될뿐 공적인 영예를 생각하지 않았던 나쁜 팔로워였다. 우리들의 얼빠진 노예근성이 문제였던 것이다.(212쪽)
먼저 나부터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리더나 정치인,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우리들이 문제다.
탁월한 리더를 만드는 것은 리더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군주론>은 그의 인생 최악의 시기에 쓰였다.
1512년 피렌체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가가 복귀하면서 공직에서 해임된 그는 투옥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이후 15년간 실업자로 은둔 생활을 하면서 낙심과 절망 속에서도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같은 명저를 남겼다. '군주론'은 "군주란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편하다" "군주는 사자의 사나움뿐 아니라 여우의 교활함도 갖춰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오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는 분열된 이탈리아의 소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법을 역설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말년의 마키아벨리는 청년들에게 '로마사' 등 고전을 가르치고, 약자들을 응원하는 '만드라골라'라는 코미디 작품을 써 대성공한다. 마키아벨리는 약자들에게 '더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며 고전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키워 살아남으라고 조언한다.
역사는 좌절과 절망 속에서 진보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위공직자에서 잘리고 백수가 된 절망의 끝에서 몸부침치며 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랬고, 조국에서 추방되어 망명객으로 외국을 떠돌던 시인 단테가 <신곡>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인간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행동하는 우둔한 존재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야 대안을 생각한다.
"세상은 늘 그랬듯이 스스로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
길을 여는 것은 결국 소외된 자들의 용기였고 ,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은 그들이 처한 극한 상황이었다."
-스티브 잡스
키게로 <의무론>-남에게 불을 붙여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남에게 불을 붙여주면 나의 불빛은 희미해지거나 꺼지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곳곳에서 당대의 통치철학이었던 '선'의 개념을 뒤집는다.
키게로 <의무론>-여우처럼 남을 기만하면서 마치 자신은 선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위장하는 것이 가장 큰 불의다.
마키아벨리 <군주론>-군주는 여우처럼 능숙하게 분장할 줄 알아야 하며, 감쪽같이 위장도 해야 하고, 때로는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사회과학서로 쓴 것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정치가들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한숨을 몰아쉬며, 애절한 마음으로 <군주론>을 썼다. 『군주론』은 실직을 당한 전직 관료가 재취업을 바라면서 권력자에게 일자리를 호소하며 쓴 글이다. 그래서 위대한 책이 됐다. 살아남기 위해 쓴 책보다 더 위대한 책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글이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쥐어 주는 인세에 눈이 멀어 알량한 글로 혹세무민하는 잡스러운 글이나,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의 마음을 떠보는 파렴치한 정치가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기만의 방책이나 권모술수의 비법이 아니라, 눈물을 쏟으며 <군주론>을 써 내려갔던 마키아벨리의 애절함이다.(229-231쪽)
더러운 세상에 침뱉는 대신 영악한 여우가 되라.(232쪽)
인터넷 악성 댓글 달 시간에 고전을 들어라.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가 왜 상상속의 신화적 영웅들을 언급했을까?
한때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군주론>의 모델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군주론>의 이상적인 모델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곧 군주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군주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 사람은 나라의 통치자다.
-플라톤
'을'이라면, 약자라면, 본서 264쪽은 정독해 볼 필요가 있다.
약자가 강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밖에 없다. 고전이 도움이 될 것이다.
강자에 의해 씌어진 역사책이 모두 옳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공부해온 우리가 문제다.
강자들이 미리 짜놓은 시스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감을 느낀채 변화를 택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강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강자는 아니었다.
강자가 되고 고전을 읽는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강자가 된 것이다.
약자들이여, 백수들이여, 을들이여, 청춘들이여!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말을 기억하자.
"애정도 없이 그리고 분노도 없이"
욕지기나 하고 분노하고 악성 댓글을 단다고 강자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냉철하게 강자들을 분석하고 고전을 통해 강자들의 심보를 낱낱히 파해져보라.
그것이 강자로 가는 길이다.
책을 덮으며,
마키아벨리는 고전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성찰했고 수많은 영웅들을 직접 관찰하고 겪으면서 시대를 꿰뚫는 위대한 통찰력을 완성해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삶과 사상을 통해, '을'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탁월함과 용기를 추구해 삶의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삶에 대한 강렬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을'로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고전을 통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강자의 힘과 권력의 속성을 파헤쳤으며, ‘약자들의 수호성자’로서 약자들에게 '탁월함으로 무장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마키아벨리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철학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 사상에는 고전과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통찰력이 가득하다. 그는 약소국의 비애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기도 하고 졸지에 해고되어 백수가 되어 고문까지 당했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세를 읽으며 중심을 잡을 수 있던 비법은 ‘고전’에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삶의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위대한 고대 사상가들을 스승으로 삼고 고전 속에서 해답을 구했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그의 살아 있는 멘토였던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렇다 할 배경도, 재력도 없던 그는 오직 공부하고 성찰하는 것만이 유일한 무기였다. 무자비한 경쟁 속에서 흔들리는 '을'들이, 약자들이 다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마키아벨리처럼 출근하고, 공자처럼 퇴근하라>, 한솜미디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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