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읽다/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

3.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칭기즈칸>

김부현(김중순) 2017. 12. 11. 11:14

부동산 투자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그 자체, 즉 물리적 측면에 집중하여 투자해왔다.

부동산은 주식, 자본, 상품 등과 함께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부동산으로 한정해 보면, 특히 부동산은 주변 환경 변화, 즉 경제적 측면에 의해 그 가치가 급등락 한다. 물리적 부동산은 스스로 가치를 진화시키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낡게 마련이다. 물리적 측면의 투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대명제로 인해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원초적 운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여 그 가치를 높여나갈 수 있는 투자 대상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같은 부동산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가치는 천양지차다. 그래서 사람에 투자하여 가장 큰 성공을 투자의 귀재이자 부동산 전문가, '칭기즈 칸'에 대해 알아본다.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 칸이야말로 사람에게 투자하여 넓은 영토를 차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국가는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제국이다.

 ‘칭기즈하늘을 의미하며 아들을 의미한다.

칭기즈 칸은 하늘의 아들’, 위대한 왕을 뜻한다. 가끔 칭기즈 칸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부동산 전문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영토 확장 측면에서 세계를 정복한 자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나폴레옹, 히틀러,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칭기즈 칸이다. ‘테무진으로도 불리는 칭기즈 칸이 정복한 땅은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대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했다.


그는 처음에 40여 개국, 7백여 민족의 땅, 777를 정복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348, 히틀러의 219, 나폴레옹의 115를 합친 682보다 더 넓은 땅이다칭기즈 칸의 사후에도 몽골 제국은 계속 확장하여 서쪽으로는 중부 유럽에서 동쪽으로는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쳐 총 3,000에 해당하는 역사상 유래 없이 넓은 땅을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넓은 영토가 전쟁을 통해 정복한 영토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정복한 영토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항복한 나라에 대해서는 총칼 대신 관용을 베풀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은 물론 그 문화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칭기즈 칸의 리더십의 면모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총칼로 전쟁을 좋아했던 칭기즈 칸의 난폭성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야율초재다. 칭기즈 칸에게 야율초재가 없었다면 그는 세계를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몽골은 고려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을 총칼로 닥치는 대로 쓸어버렸다.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했을 정도로 잔인했다. 오로지 총칼만이 살 길이요 천하를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같은 칭기즈 칸의 야성을 잠재울 수 있었던 사람이 야율초재였다. 둔재였지만 충직했던 비서 야율초재가 없었다면 칭기즈 칸은 한낱 골목대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야율초재도 대단한 충복이었지만 자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야율초재라는 측근을 단박에 알아본 칭기즈 칸 역시 사람에 투자하여 성공한 이른바 부동산 투자의 귀재라 할 만하다. 당돌했던 야율초재는 칭기즈 칸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기 전에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나의 부하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폐하! 두 가지만 약속하여 주신다면 신은 폐하의 충복이 될 것을 하늘과 땅에 맹세합니다.”

두 가지? 그래 어떤 요구 조건인가?”

폐하! 백성이 피눈물 흘릴 때 함께 눈물을 흘려주실 수 있습니까?”

천지신명께 약속한다! 그리고 다음 조건은?”

폐하! 기근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있을 때 같이 굶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짐의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키겠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신은 이제부터 폐하의 것이옵니다. 온 힘을 다해 폐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야율초재가 말한 두 가지 조건에 함축된 의미는 백성이 모든 통치의 목적이고 제왕은 이를 위해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야율초재는 높은 문화에 대한 굳건한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몽골이 자기 문화를 갖지 못한다면 점령한 나라를 온전히 다스릴 수 없습니다.”라고 직언했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진정한 군주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힘으로 천하를 차지할 수 있으나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고 충언했다.

 

칭기즈 칸의 개방적 용인술(用人術) 덕분에 야율초재라는 측근을 얻을 수 있었다.

야율초재로 인해 그는 인재를 채용할 때 능력을 최우선 척도로 삼았다. 출신성분이나 사회적 지위, 연고 등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인종, 언어, 종교,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라도 실력만 있으면 쉽게 등용되는 능력주의, 실력주의가 자리 잡았다. “열 명을 능히 통솔해 작전할 수 있는 사람에겐 천 명, 만 명을 위임해 작전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도 칭기즈 칸이었다.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가차 없이 잘리고 부하에게 그 자리를 넘기게 했다.

 

이러한 용인술의 기준은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자무하와 몽골 초원의 패권을 다툴 때부터 칭기즈 칸을 빛낸 요인이었다. “칭기즈 칸은 공정한 리더이고 재능에 기반을 둔 보상을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무한한 신분상승의 기대, 어떤 병사라도 사령관이 될 수 있다는 꿈은 전투에서도 경쟁심을 부추겼다. 이에 따라 몽골 사회의 비주류를 중심으로 인재들이 칭기즈 칸에게로 모였고, 칭기즈 칸과 같이 진흙물을 마신소위 발주나의 맹세에 참여한 멤버 대다수도 다양한 부족의 미천한 출신이었다. 결론적으로 칭기즈 칸은 무지막지한 전쟁의 포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탁월한 용인술과 개방성, 토착 문화 존중과 같은 고급 리더십의 소유자였기에 단기간에 그 많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부동산 관련 유능한 조언자, 야율초재와 같은 사람을 가졌는가?


“칭기즈 칸-사람에 투자하여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인류 최초의 부동산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