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읽다/부동산스토리

57. 강남은 그림의 떡이자 희망고문이다

김부현(김중순) 2020. 1. 10. 08:57


강남은 그림의 떡이자 희망고문이다

 

<바벨탑 공화국>에서 저자는 서울 초집중화의 빨대로 이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대학과 대기업을 꼽았다. 서열이 높은 대학의 80% 이상이 서울에 몰려 있어 지방의 우수한 인재들과 돈을 빨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출생률 저하 등에 따른 학생감소로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정원 감축 프로젝트의 75%가 지방대이고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오히려 정원이 늘고 있다.

 

20178<경향신문>에서 조사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수석, 장관 등 주요 요직의 출신대학을 보면 서울대 90, 고려대 24, 연세대가 16명으로 나타났다. 61%가 소위 말하는 ‘SKY 대학출신이다. 사실 1,500만 촛불은 박근혜 정부의 아웃만 외친 것은 아니었다. 그 밑바닥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있었다. 세계사적으로도 위대한 혁명으로 불리는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초기 SKY 출신 50.5%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힘을 합쳐 SKY대학을 밀어준 꼴이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 뛰어난 부분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역과 학교의 안분으로 인한 국가적·지역적 공익이 더 크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서울의 유명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정부 주요 요직에 지방대생을 일정 비율 충원하는 것이 지역균형발전에 더 효과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대기업이도 마찬가지다. 50대 기업의 100%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서울 집중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니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이니 요란스럽지만 진짜 알맹이는 서울에 몰려 있어 지방은 서울의 노예이자 하청업체에 불과하다. 영화 <강남 1970>에서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작대기만 꽂으면 모두 내 땅이다라고 했던 땅이 오늘날 강남이다. 당시 서울 변두리의 강남은 황무지와 논밭으로 별 쓸모없는 땅이었다. 그 강남이 오늘날 강남으로 변신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경기고, 휘문고, 숙명여고 등과 같은 명문고의 강남 이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동산 관련 책이나 소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좋은 투자처나 입지의 예로 강남을 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강남의 사례를 언급하지 않는다. 강남이 나빠서가 아니라 강남이 좋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사실 강남에 투자할 여력이 된다면 굳이 부동산 입지나 정책에 대해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 소위 묻지마식으로 투자를 해도 괜찮은 곳이 강남이다. 전 국민들의 로망인 강남은 입지 그 너머의 욕망의 화신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라. 국민의 95%는 강남이 아무리 좋아도 투자를 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부동산 강의장을 꽉 메운 사람들, 부동산 지표를 챙기는 사람들, 대부분 강남에 투자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돈이 많아 강남에 투자할 여력이 되거나 이미 투자를 한 부류라면 사실 부동산 공부를 하는 대신 골프 치면 된다. 강남에 투자할 여력이 안 되니까, 적은 돈으로 투자할 곳을 찾으려다 보니까, 임장을 다니고 그 힘든 공부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액투자자들, 강남에 투자할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면 강남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희망 고문일 뿐이다.

 

부산의 핵심상권인 서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20대 상권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서면 중심가의 땅값은 3.315,000만 원 수준이다. 부산 사람들 역시 95%는 이런 곳에 투자할 여력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투자란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최상의 입지와 투자처를 찾는 것이지 희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입지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슬세권이 각광받고 있다. '맥세권(맥도날드)이나 스세권(스타벅스)은 이젠 옛말이 되었다. '슬세권'슬리퍼+세권의 합성어로 잠옷과 같은 편한 복장으로 슬리퍼를 신고 마트, 쇼핑몰, 영화관, 커피전문점, 은행 등과 같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한 주거 권역을 의미한다.

 

슬세권이 등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 중심의 1~2인 가구 증가와 맥락을 같이 한다. 대형마트 보다는 온라인 쇼핑에 익숙하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주거지를 결정할 때 마트와 같은 쇼핑시설보다는 편의시설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인 <신한트렌디스>의 분석(2017)에 따르면, 집 주변 500m 이내에서 카드 결제한 비중이 무려 45%에 달했다. 이는 3년 전의 37%보다 8% 증가한 수치다. 거주지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집 주변에서 소비한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집 앞 상권이나 단지 내 상가로의 투자 수요가 집중되는 추세에 발맞추어 최근 오픈한 롯데몰 수지점은 슬세권 공략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운 대표적인 사례다. 반경 1km 이내에 2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다 쇼핑몰, 마트, 시네마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입점해 있을 뿐만 아니라 쇼핑몰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이스링크장과 암벽등반장까지 들어섰다.

이처럼 온갖 편의시설이 몰린 입지가 우수한 대도시의 경우 도시확장을 규제하는 정책의 부작용으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은 살인적이다. 그 어떤 정책과 규제로도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이길 수는 없다. 한 조사에 의하면, 2000년에 빈곤했던 지역의 75%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가난했고, 반대로 1990년에 부유했던 지역의 80%20년 뒤에도 여전히 부유했다. 부동산 계급사회가 갈수록 고착화 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우편번호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의 저자이자 '도시기획 분야의 석학'으로 불리는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얼마 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2019 월드 스마트시티 엑스포World Smart City Expo·WSCE’ 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도시의 성장을 위해 스마트 발전, 지속가능성,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서울은 한 해에 100건의 벤처캐피털 계약을 체결하고 95,000만 달러 상당의 벤처캐피털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전 세계 최상위권의 경제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서, “일본, 이스라엘, 미국 등과 맞먹는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인재풀 면에서는 세계에서 1순위라고 했다. 미국은 대도시에서 밀려난 비숙련 노동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소규모 도시가 350개 이상이 되지만 한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응집돼 있어 여러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울의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지나친 서울 집중화에 따른 공급부족 때문이다.

 

움직이는 도시들의 전쟁을 그린 영화 <모털 엔진Mortal Engines>,‘상상력의 대가라 불리는 피터 잭슨Peter Jackson의 또 다른 세계를 확인해볼 수 있는 영화다. 클라이막스는 바로 압도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의 비주얼이다. 도시가 통째로 움직이고 달리는 모습이 웅장하다. 영화 속 움직이는 도시는 바로 세계적인 도시 런던인데, 서울 전체가 움직인다고 상상하면 된다. 3,000년대라는 먼 미래를 그리고 있음에도 인간의 기본적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대도시의 땅따먹기 경쟁이 심해지면 결국 영화 속 하늘의 공중도시, ‘에어헤이븐이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