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읽다/부동산스토리

58. 입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김부현(김중순) 2020. 1. 11. 08:34

입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입지loc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하여 선택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경제행위를 하며 살아가기 마련인데 어떤 부동산이 경제행위를 하기에 적합하고 접근하기에 용이하다면 우수한 입지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입지는 인류가 지상에서 정착 생활을 하면서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과제였다. 우리나라에서 주택의 경우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배산임수를 좋은 주택의 입지로 보고 있지만,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니 배산임수를 넘어 교통이나 편의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나 바다를 낀 '배산임해'를 우수한 입지로 보는 것이다. '물=돈', 물이 곧 아파트 값으로 직결된다. 부동산 관련자들이 입지가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는 이유이다.

 

 

혹자는 부동산의 3대 요소로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라고 한다. 부동산의 물리적 비이동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러나 경제적 효용 측면에서는 이미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사실부동산=입지라는 공식은 과거 지하철 노선이나 도로 여건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투자 측면에서 보면 이제는 입지 너머의 심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부동산=심리라는 명제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서울의 집값을 잡기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강남 아파트는 최고가를 경신하여 3.31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아파트는 일본산 쓰레기로 지어졌다는 한 언론 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105(32) 아파트 건축에 들어가는 총 시멘트 값은 15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3.3(1)가 아니라 105(32) 전체, 그리고 복도와 지하주차장 공용면적을 포함한 총 시멘트 비용이 150만 원이라고 한다. 105아파트를 가장 낮은 시세인 약 3억 원으로 가정해 보면 시멘트 값 150만 원은 3억 원 중 겨우 0.5%에 불과하다. 평당 들어가는 시멘트 값은 고작 47천 원인 아파트의 매매가가 1억 원이라는 것은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단순한 주거 수준을 넘어 욕망을 분출구이자 권위의 상징이 된 것이다.

입지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에서 좋은 입지는 이미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입지가 좋은 곳은 이미 주택이 들어섰다. 재건축이 아니고는 좋은 입지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거의 없다. 그리고 현재 좋은 입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후세에게 물려주지 매물로 나올 확률이 별로 없다. 입지를 강조할수록 똘똘한 한 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외국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총인구(2018.11.1. 기준)5,163만 명으로 20175,142만 명에 비해 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서울, 인천,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인구는 2,571만 명으로 무려 전체 인구의 49.8%를 차지했는데, 20172,552만 명에 비해 19만 명 증가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은 탈지방화와 맞물려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입은 계속될 것이다.

 

<목민심서>의 저자이자 조선 중기 대표적인 학자 정약용, 그는 단순히 글을 쓰고 기중기를 발명한 과학자에 그치지 않고여전제閭田制’(토지는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공으로 경작하며, 그 수확 또한 공공으로 한다)를 실시하여 토지의 공공개념, 즉 오늘날 토지공개념의 필요성을 널리 전파하는 등 부동산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의 일가는 선대에서 무려 8대째 홍문관 벼슬을 역임한 명문가의 자손이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줄줄이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박해사건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약용은 억울하게 유배를 가게 되자 세상 모든 부모 마음이 그러하듯 자식들만은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배지에서 편지로 자식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비책을 가르쳤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는 오직 서울의 10리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또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면서 자식들에게 절대로 서울 주변을 떠나서는 안 되며, 가능하면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 이유로,“중국은 문명한 것이 풍속이 되어 아무리 궁벽한 시골이나 변두리 마을에서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는데 방해받는 일이 없으나, 우리 조선은 그렇지 못해서 서울 문밖에서 몇십 리만 벗어나면 태고처럼 원시사회가 된다. 그러면 마침내 노루나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떨어진 무지렁이가 되고 만다. 문명의 혜택이 닿지 못하는 곳에 살다 보면 견문이 좁아져 영영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라고 했다. 조선시대의 정약용이 오늘날 우리나라 서울의 집중화 현상을 미리 예측한 것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금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20182분기 기준 우리나라 상위 20%의 월 소득은 930만 원인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00만 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서울에만 상위 20%에 해당하는 연 1억 이상인 가구가 75만 가구나 된다. 주택시장에 있어서 가격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절대적인 의 위치에 있는 부류들이다. 이 정도면 강남을 기웃거려볼 만하다. 모든 국민들이 잠재적 수요자인 강남, 그렇다면 공급은 그에 따라주고 있는가. 강남, 서초, 송파 3구의 아파트는 약 33만 가구인데, 최근 각광 받는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15만 가구를 더해도 50만 가구 남짓이다. 문제는 50만 가구 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수요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허수에 가깝다. 예를 들어, 송파구만 봐도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외 몇 개의 단지에만 수요가 몰리고 있다. 입지도 좋고 지은지 10년 미만인 신축 아파트 10만 가구 정도를 걸러내고 나면 나머지 아파트는 별로 인기가 없다. 인구 60만 명의 송파구에서 실제 수요자들이 몰리는 아파트는 10만 가구를 두고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보니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강남 3구 중 공급량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송파구가 이 정도니까 강남이나 서초는 이보다 더할 것이다.

 

이처럼 일부 인기 있는 단지에만 수요가 몰리다 보니 그 주변 아파트값이 덩달아 올라가 서울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다. 정부는 집값 잡기라는 명목으로 규제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실정이다. 팔 사람도 없고 공급도 부족하니 그 무슨 대책이 약발이 먹히겠는가.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의 최근 주택공급량은 예년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공급 여건은 안정적인 편"이라며 '주택 입주 물량'을 근거로 제시했다. 서울의 경우 최근 10년 평균 입주량은 62,000가구, 5년 평균은 72,000가구였는데, 2017년에는 그보다 많은 75,0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서울 아파트값은 오히려 6.6% 뛰었다. 이전 1년간의 상승 폭인 4.7%를 훌쩍 뛰어넘었다. 공급이 부족하면 그 어떤 처방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을 겁주고 협박하는 거창한 대책보다는 공급 자체를 늘리는 게 급선무다. 시장에서 공급 부족을 이야기하자 정부는 서울 외곽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정약용의 말로 비추어보고 또 현실을 봐도 서울 외곽 3기 신도시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서울 외곽이 아닌 중심지에 공급을 늘리지 않는 한 서울 집값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평당 1억 원을 돌파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