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죽은 뒤 가는 소위 '내세'라고 불리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다.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은 저승 세계 여행을 주제로 한 13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가 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 쓴 대표 서사시다. 내세 관념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접근하여, 영화 <세븐>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묵시록처럼 언급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신곡>은 작가 자신의 사상과 철학, 그의 사생활 그리고 그의 시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베아트리체의 죽음,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정치적 반역자로 기소되었던 사건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들이 그러하듯 <신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테의 일생과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을 포함한 총 100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후세계의 여행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권력, 애욕, 탐욕으로 둘러싼 어두운 숲, 바로 지옥이다. 그림자가 말한다. “한때는 사람이었네. 지금은 아니지만...” 지옥의 문 입구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희망을 버려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지옥이란 다름 아닌 희망과 꿈, 비전이 없는 곳이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중간쯤에 연옥이 있다. 연옥은 바람과 물과 별이 있는 곳이다. 지옥에 떨어질만큼 사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천국으로 갈만큼 선행을 베풀지 못한 사람들, 즉 죄를 씻어내면 천국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다.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천국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가고자 하나 갈 곳을 모르는 자들, 희망을 가졌으나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지 모르는 자들이 머무는 지옥과 천국의 간이역이다. 연옥을 지나 비로소 천국에 이르면 희망과 꿈, 비전과 사랑이 있는 곳이다. 연옥에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너의 별을 따라가는 한, 너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외친다. “희망을 잃지 마라. 별을 따라, 꿈을 따라 살아가라.”고.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받는 자본주의에 발을 붙이고 하루를 살아가기 힘겨운 사람들, 투자에 실패하고 사업이 망해 일가족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헬조선이라며 자포자기하는 청춘들, 그래도 ‘희망을 가지자. 꿈을 잃지 말자. 그리고 별을 보자.”는 말은 그저 달콤한 사탕발림일까? 매일 매일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외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인문학은 젓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배는 고프지만 마음은 단단해지는 청량제다. 문득문득 삶이 부대끼고 덜컹거릴 때 단테를 떠올려 보자. 정치적 반역자에 배신당한 인생,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와 결혼도 할 수 없었던 정말 지옥 같은 삶을 살았지만 천국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단테의 삶을 기억하자.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제1권에서 “공과대학의 도시공학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다. 도시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에 무슨 인문학을 들먹이냐고들 한다. 철학적, 인문학적 식견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부동산 너머의 사람을 보지 않고 눈앞의 돈만 쫓게 된다. 그 어떤 학문도 결국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과정에 불과하다.
건축가이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인 승효상은 “굳이 건축을 다른 학문의 부류에 넣으려고 한다면 인문학에 가깝다.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속에 작업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필수 불가결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라고 했다.
아름다운 삶에서 네가 제대로 들었다면,
네가 너의 별을 따라가는 한,
영광스러운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할 수 있으리라!
- 단테, <신곡>지옥편 15곡 55-57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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