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소설, <시시포스의 신화>에 나오는 '형벌' 이야기다.
그리스의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시시포스Sisyphus는 신들을 속인 죄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며칠 아니 몇 달에 걸쳐 등골이 휘어지는 중노동을 통해 바위를 산꼭대기로 겨우 밀어 올리자마자 바위는 엄청난 속도로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다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렸으나 바위는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시시포스는 정말 무의미하고 맥빠지는 노동을 반복해야 했다. 이것은 오로지 신들만이 고안할 수 있을 법한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다. 무의미한 반복 노동에 담겨 있는 진짜 형벌은 등골이 휘는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처음부터 노동에 대한 결과라고 간주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금까지 24번에 걸쳐 크고 작은 부동산대책이 발표됐다.
핵심은 대출규제와 세금폭탄이다. 규제일변도의 대책에 집중하다 보니 뒷북 아니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일쑤였다. 정말 집값을 잡는 방법이 없는 건지, 아니면 방법을 모르는 것인지. 이럴 거면 차라리 가만히 있던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시장 스스로 균형점을 찾도록 말이다. 마치 21세기 부동산시장에 20세기 대책으로 접근하려는 듯하다. 이제 시장은 정부 정책의 입안자들보다 한 수 위다. IMF때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당시의 국민들이 아니다. 그때야 정부에서 대책을 발표하면 "예! 국가님!"하고 군소리없이 따랐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저금리로 인한 시중 유동자금이 풍부한 이유도 있지만 코로나19로 경제가 숨죽이는데도 동학개미운동이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당시의 학습효과 탓도 있다. 정부정책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과 반대로 하면 된다는 학습이다. 정부대책은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뻔한 대책을 재탕, 삼탕식으로 돌려막기 하다 보니 시장은 콧방귀만 뀌고 있다. 약발이 없다. 약발이 없으면 플라시보 효과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젠 그것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오랜 학습효과에다 강력한 내성까지 생긴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면서 ‘시시포스의 형벌’을 떠올려본다.
정책 입안자들이 마지 못해 시장에 떠밀려 그저‘최선을 다했다’라는 말로 대책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 번 써먹었던 대책들을 남발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사기를 쳐서는 곤란하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은 결과물이 없을 때 써먹는 핑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니, 제대로 했으면 하는 게 국민들의 바램이다. 전방위적으로 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정부나 그 기관들은 예외로 착각하고 있다. 개혁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부터 부동산대책의 기본 틀과 의식의 뿌리 그 자체부터 개혁해야 한다. 철밥통 기질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경제 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국민의 경제 수준이 아주 높아진 상황인데 10년 전 대책을 꿔다 쓰는 그 발상부터 바꾸어야 한다. 10년이면 이미 옛날이다. 아무 생각 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반복적으로 밀어올리는 무의미한 형벌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러나 형벌을 받는 쪽은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시장에선 ‘정부가 손만 대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나돌고 있겠는가. 정부는 집값을 잡는 것이 아니라 손만 대면 집값이 오르는 ‘마이더스의 손’이 된 것이다. 정부가 규제를 하기만 하면 규제에 벗어나 있는 인근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풍선효과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부산 해운대 등 5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더니 인근 창원, 울산으로 불길이 번졌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대책을 오히려 투자타이밍을 잡는 기회로 이용하는 투자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세금폭탄으로 불리는 7.10대책도 결국 증세 없이 세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다. 정부도 풍선효과의 부작용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손 놓고 있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부담을 늘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집값이 잡힐까?
집값을 잡으려 하지 말고 인간의 욕망을 잡아야 한다. 통계놀이, 숫자놀이에 집중하지 말고 그 너머 인간의 심리 즉 욕망을 잡아야 한다. 통계는 죄가 없다. 문제는 그 통계를 적용하고 활용하는 사람의 판단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통계나 지표를 활용해도 나름의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정보통신의 발달로 통계 그 자체는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는 말을 한 디즈레일리Disraeil도 통계전문가였다.
따라서 집값을 잡는 방법은 집을 충분히 짓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을 세금으로 협박해서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인간을 모르는 무지에 가깝다. 공급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부동산은 수요보다 공급이 중요하다. 2020년 7월 ‘2020 더벨 WM포럼’에서 수석부동산 전문위원은 "서울, 경기도를 중심으로 주택 수요 단위인 가구 수는 계속 팽창하지만 반대로 공급 물량은 급격히 쪼그라든다. 일반매매, 재건축·재개발, 분양 및 전세 등 예외 없는 가격 상승의 진원지다. 주택 공급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의 핵심이다"라고 주장했다. 금값이 오르는 것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는 것도 결국은 공급이 부족해서다.
서울과 수도권 집값을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중에서도 강남3구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하면서부터 노무현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강남3구와의 전쟁을 선포하더니 결국 강남3구가 가장 많이 올랐다. '경제만랩'이 KB 부동산 자료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7년 5월 강남구의 평당 평균 매매가격은 4,397만 원 수준이었지만 2020년 11월에는 7,221만 원으로 나타났다. 다주택자를 두더지잡듯이 하니 똘똘한 한 채로 강남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다.
강남을 빼고도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이다. 전국에서 공급량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인구 1,000명당 주택 수(2016년)’를 지역별로 보면, 전국 평균은 387.7호였는데 서울은 371.6호, 수도권은 360.8호로 나타나 평균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 반면 부산은 399.8호로 전국 평균보다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실제 서울은 2020년 5만 호에 육박했던 아파트 입주 물량이 2021년 들어 절반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2022년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도 역시 2019년 14만 호 안팎을 정점으로 2022년 절반 이하로 급격한 우하향 곡선을 그릴 예정이다. 공급이 부족하면 그 어떤 대책도 효과가 없다. 서울 집값만 잡으면 되는 이유는 지방은 서울공화국의 식민지로 전락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지방 부동산을 들쑤시는 장본인은 서울 사람들이다.
부산은 어떤가? <그래프>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의 수요량와 공급량(입주량)이다. 2022년과 2023년은 예상치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부산에서 필요한 신규아파트는 20,000~17,000호였지만, 통계상으로는 2021년을 제외하고는 공급량 초과 상태였다. 그러나 공급초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8~2019년 뿐이었다. 처음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해운대 등 7곳)되었던 결과로 봐야 한다. 공급초과에도 가격이 올랐다는 것은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다. 다주택자 증가와 1인 가구수 증가 등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전통적인 수요-공급의 법칙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자료 : 부동산지인
부동산의 경우,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을 무너뜨리는 것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다. 수요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공급은 편차가 심하다. 아파트를 지어 입주하기까지 3년 이상 걸리는 긴 리드타임 때문이다.
얼마 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해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아파트는 빵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공급을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을 에둘러 빵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가 빵이라면 대책도 필요 없고 비싼 월급을 주는 장관도 필요 없을 것이다.
긴 리드타임 외에 공급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건설사들의 갑질 아닌 갑질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으면 분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기업의 속성상 당연하지만 그동안 집값 상승의 최대 수혜자에 건설사도 예외가 아니다. 물량이 많아 미분양이 발생하고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건설사들은 분양을 해도 수익이 별로 나지 않거나 미분양 우려 때문에 공급을 미루기 때문이다.
언론 역시 집값 상승을 부채질 하는 주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급부족, 건설사 갑질, 언론사의 선동질은 집값을 불안하게 하는 3종 셋트다. 언론의 부동산 관련 기사는 건설사의 광고성 지라시에 불과하거나 대중들을 유인하여 폭탄을 쥐게 하는 낚시성 기사가 대부분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언론기사의 전문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다가는 폭탄을 쥘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좀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반복하지만 공급을 늘려야 한다. 주택보급률 '100% 돌파' 운운하며 공급은 충분하니 있는 집으로 요리조리 끼워 맞추어보겠다는 것은 한가한 생각이다. 1채만 보유하라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1채를 가지면 2채를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공급을 늘려 집값이 떨어지면 어떡하냐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정부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실제 집값이 폭락했다고 정부가 대출금을 대신 갚아준 적이 있었던가! 집값이 폭락하면 그것은 결국 주택 소유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집값 폭락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보다 공급 부족으로 인한 집값 상승이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국민들의 정신건강도 고려해야 한다. 집 때문에 생긴 국민들의 화병을 정부가 대신 치료해 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수요자들이 원하는 만큼, 능력이 되는 만큼 여러 채 가질 수 있게 공급을 늘려야 한다. 부동산에 관한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하는 만큼, 능력치 만큼 집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방법 뿐이다. 인구도 줄어드는데 공급을 늘리면 빈집만 남는다고 걱정할텐가! 주택에 사람이 반드시 거주해야 한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지금도 빈집은 많다.
이제 집은 내구성 강한 소모품이자 공산품이다. 따라서 다주택자들의 선의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세금으로 협박하며 빨리 처분하라는 대책은 하수다. 인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숫자로 장난치는 것이다. 또한 다주택자들에게 정의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기대 자체가 무의미하다. 인간은 권력이 생기면 정의를 내팽개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다주택자들과의 오랜 전쟁에서 이미 패하지 않았는가!
옛날 리디아에 욕심 없고 착하기만 했던 한 양치기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기게스Gyges', 양을 치던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지진을 맞게 된다. 지진이 일어난 자리에는 땅이 갈라져 동굴이 생겼고, 그는 호기심이 생겨 갈라진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굴 안에서 거인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시체의 손가락에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기게스는 거인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반지의 흠집 난 곳을 안으로 돌리면 자신은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보이지 않는 힘', '절대 마법의 반지'를 갖게 된 기게스는 나쁜 마음을 먹게 된다. 가축의 상태를 왕에게 보고하는 전령으로 궁전에 들어간 그는 마법 반지를 이용하여 투명인간이 된 후 왕비를 간통하고, 칸다울레스 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 2권에 나오는 가공의 마법 반지인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라는 우화다. 이 반지는 소유자의 마음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 시인 루카누스Marcus Annaeus Lucanus 역시 '힘은 정의의 잣대다'라고 일갈했다. 힘 있는 자는 정의 따위를 내팽개치고 필요에 따라 지켜야 하는 불편한 의무감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낮 양치기에 불과했던 기게스도 절대 마법의 반지를 손에 넣는 순간 머리 회전이 빨라졌다. 돈과 명예, 그리고 욕망을 가장 빨리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멀리 있는 불의를 지적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순간, '이건 좀 아니지'가 되어 정의의 잣대는 뒤틀린다.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다. 따라서 다주택자, 부자들에게 선의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무주택자도 다주택자가 되면 마찬가지다.
내가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분쟁에 휘말리지 않아도 될 때 정의를 이야기 하는 게 쉽지만 정작 내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정의를 말하지만 당사자가 되어서도 정의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정의와 도덕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많은 사람들이 상황과 대상에 따라 도덕의 끈을 붙들지 놓을지, 죄책감을 느낄지 말지를 달리한다’고 했다. 인간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 ‘선택적 도덕적 이탈selective moral disengagement’을 자유자재로 이루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 도덕을 던져버릴 준비가 되어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자신만의 수많은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욕망을 먹고 사는 부동산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머지 않아 듣도 보도 못한‘부동산 우울증’, ‘부동산 화병’이라는 한국적 마음병이 기네스북에 오를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24번째 대책을 통해 14만 호, 공공재개발, 공공재건축을 통한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공급은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규제위주였던 10년도 더 된 노무현 정부 때 써먹었던 대책들만 남발하고 있어 집값이 잡힐지 의문이다. 코로나19는 안정시킬지 모르겠지만 집값 안정은 요원해 보인다. 실제 노무현 정부때 부동산 대책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다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잡아야 할 대상은 다주택자가 아니라 정책입안자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국토부 장관도 부동산전문가가 아닌 심리학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인간 심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화려한 통계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유혹하는 시대는 지났다.
영화 <관상>에서 평생 관상만 봐왔던 주인공은 이렇게 한탄했다.
"난 사람의 얼굴만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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