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읽다/부동산스토리

60. 한국식 자본주의는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김부현(김중순) 2020. 5. 29. 10:28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대다수의 중년 세대들은 어린 시절, 60~70년대는 부동산이라는 의미조차 잘 모르고 자랐다. 시골 초가집은 온 가족이 바글대며 하루 세 끼 거르지 않고 먹는 것이 삶의 전부인 시절이었다. 따라서 집은 가족들이 몸을 부비부비 하며 사는 곳이었지 집이 돈이 된다는 생각은 대부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도시에서는 복덕방이 성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해운대 엘씨티더샵아파트에서 본 장산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정의하면서,“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경험만 믿는다”고 했다. 또한 조정래 작가도 <정글만리>에서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은 멋지기는 하지만 정작 배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역사학자 전우용은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만들고 저열한 지도자는 역사책을 바꾼다.”고 했다. 어떤 분야든 역사와 철학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는 통계와 지식은 결코 지혜가 될 수 없다.

 

도시를 뒤덮은 아파트 숲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 고등사회과학원 연구교수였던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는 1990년 서울을 처음 방문하면서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단박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서울의 아파트’라는 주제를 선택하여 2003년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한국이 땅이 좁아 아파트가 많은 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압축된 현대성compressed modernity’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아파트는 돈이나 주식과 비슷한 환금성을 가진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었다. 특히 1970~1980년대 산업화를 담당한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중산층이 맺은 ‘3각 동맹’이 아파트를 상위 계급화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서울사람, 나아가 한국인에게는 ‘욕망의 상징’이며 3각 동맹이 건재하는 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지속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르네상스의 여인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을 저술한 시오노 나나미도 일본인이었지만 평생을 로마사 연구에 몰두하여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듯이, 발레리 줄레조 역시 프랑스의 아파트가 아닌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연구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아파트문화 연구 분야에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잘 아는 권위자가 되었고, 실제 국내 유수 기관들이 앞다투어 초빙해 강연을 듣고 있을 정도이다.

 

1932년 일본인의 손으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충정아파트에서부터 우리 손으로 지어진 최초의 종암아파트를 지나 부산 최초의 아파트 청풍장, 최고가인 아크로리버파크와 최고층인 해운대엘씨티더샵에 이르기까지의 아파트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왜 우리가‘아파트홀릭aptholic’에 빠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단초와 아파트가 대세가 된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투자측면에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체크포인트 중 하나다. 투자는 심리라고 하는데 역사는 곧 인간 심리의 압축판이 아파트였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1983년 가수 윤수일 불렀던 ‘아파트’의 노랫말의 일부이다. 당시 군입대를 위해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따불백 동기와 자대 배치를 받아 전입신고하는 내무반에서 필자는 ‘아파트’를, 다른 동기는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7080세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고 노래방이나 야구장에서도 자주 불려지는 노래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유명세를 탄 것은 시대의 흐름과 그 이면의 심리를 파악한 덕분이다. 1980년대 중반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고도 경제성장으로 한국의 주거문화가 급격하게 바뀌어가던 시기였다. 산업화의 확산으로 근로자들이 부족해지자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었고, 주거문제가 시급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신의 한수’를 통해 주거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성냥갑 아파트’였다. 학교와 교도소 건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로 1983년 목동 신시가지, 1985년 상계동 신시가지 개발과 1989년 주택 2백만호 건설대책으로 평촌・산본・분당・일산・중동 신도시 개발 등 엄청난 아파트 개발 붐이 불었다. 개발의 결과로 주요 도시는 점점 아파트 숲으로 변해갔다. 1909년 당시만 해도 서울의 인구는 23만 명에 불과했다. 1920년대 이후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근대식 건축물이 속속 등장했다. 학교와 극장과 백화점이 생겨나고, 근대적인 상가가 나타나는 등 서울의 모습은 날로 새로워졌다.

 

총독부의 통계에 의하면, 1949년 서울의 주택비율은 한옥 10만2300호, 양옥 2천100호, 일본식 가옥 3만250호, 토막土幕 2천300호 수준이었다. 양옥의 비율이 1.53%에 불과했으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이었다. ‘허술한 움막’을 일컫는 ‘토막’이라는 말의 기원은 정확치 않으나 동경제대 위생조사부의 자료에 의하면 토막촌은 한일합방이후 근대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발생하였으며, 그 시기는 1919년 이후로 추정된다. 경성부에서는 토막민을 ‘하천부지나 임야 등 관유지나 사유지를 무단 점거하여 거주하는 자’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의 중심가는 뭐니 뭐니 해도 오늘날 명동과 충무로 일대인 남촌이었다. 이곳에는 신식 상수도가 들어서고, 널찍한 도로가 났으며, 전기가 밤을 낮처럼 밝혔다. 수많은 상가는 화려한 물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었고, 일본인 거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한국인이 쫓겨나기도 했다. 바야흐르 2018년, 우리나라 전체 주택의 61.4%를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어 명실공히 아파트천국이 되었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아파트 단지숲에 놀란다. 하나같이 쭉쭉 빵빵 고층아파트라는데 또 놀란다. 세계적으로도 중국 정도를 빼면 기이한 현상임에는 틀림 없다. 2017년 한 일본 유명 블로거가 작성한 글의 번역판이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단지 마니아’라고 칭하면서 “아파트단지 왕국인 서울은 지하철 출구만 나오면 눈앞에 아름다운 아파트단지가 펼쳐지는 특이한 곳”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하지만 비아냥이라기보다는 부러움 때문이다. 섬나라 일본은 잦은 지진이나 해일 등과 같은 자연재해가 많아 태생적으로 아파트를 짓기 힘든 땅이다. 일본인들이 단독주택을 선호해서 아파트가 적은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아파트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를‘주택=아파트 또는 주택=아파트단지’라고 인식하는 그의 주장이 억지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 5년마다 발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 유형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50.1%로 나타나 전년 대비 1% 증가했다. 특히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는 60%가 넘는다. 수치로 봐도 ‘아파트공화국’이라 불릴만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성냥갑 같은 꿀벌집에 살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택의 대부분은 한옥 아니면 양옥이었다. 당시에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신기해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아파트에 살지 않는 게 신기한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건축법>에 의해 규정되는데,‘5층 이상의 공동주택’을 말한다. 공동주택이란 결국 적층積層(하나씩 포개져 층을 이룸) 주택이다. 이것은 단순히 층들을 겹겹이 쌓은 것이 아니라 각층에 다른 세대가 거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도 국민도 아파트에 홀릭되어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대한민국 아파트는 산업화의 압축판이자 한국형 자본주의의 싹을 틔운 시초였다. 명실공히 아파트 자본주의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양극화의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지금도 공사는 멈출 기미가 없다. 아파트를 모르고는 한국식 자본주의에 온전히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을 지경이다.